1995년 부산으로 이사오면서 금곡주공아파트 6단지에 전세 집을 얻어 어느 덧 5년을 살았습니다. 주인이 서울에 살기에 마치 우리집인양 편안하게 아주 잘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주인 한테서 전화가 오기를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주인의 요구에 따른 경제사정이 안되었기에 우리는 집값을 절충하려 했으나 그분도 어려운 형편이어서 결국 우리는 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워 주세요"라는 말을 끝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감정이 가슴에 밀려왔습니다. 그것은 섭섭한 감정이었는데 가만히 느껴보니 그것은 그 동안 우리 가족이 몸을 담고 살았던 집이었습니다. 다들 마찬가지입니다만 애착을 갖고 살던 집은 정이 드는가 봅니다. 정말 우리는 이 집이 정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특별한 경우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가령 신혼 살림을 차렸던 집, 첫 아이를 나은 집,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마친집등은 잊을 수가 없는 아름다운 추억의 공간이 될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이 아파트를 새로 짓고 우리가 처음 입주하고 살았기 때문에 정이 더 들었습니다. 이 세상에 무엇이든 새것은 참좋습니다. 새옷, 새신발, 새차 그래서 누구나 새것에 대한 설레임과 거기에 따른 기분 좋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24층의 앞편은 낙동강과 뒤편은 금정산이 훤히 펼쳐져 있기에 전망이 아주 뛰어납니다. 그래서 처음 집을 얻으러 왔을 때, 무슨 콘도인가? 할 정도로 감탄의 탄성을 발했었습니다.

이곳에서 저희 아들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들어갔습니다. 잊을 수 없는 것은 금곡동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 공간이 좁아 집의 거실과 안방을 서재로 썼습니다. 집을 비워달라는 그 날밤 나는 방과 거실과 베란다를 여기 저기 돌아보고, 쓰다듬으면서 그 동안 비바람을 가려주었던 보금자리가 너무 고마워 "고맙다 아파트야! 그 동안 잘 살았구나" 하면서 내 삶의 공간이었던 집과 정겹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 생명의 편지를 읽으시는 분이여!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이렇습니다. 한 밤중 거실에 앉아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정 목사야, 이제 집을 비워줘야 겠어!" 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서 말씀드리는 집이란? '아파트'가 아니라 우리의 '육신'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생명을 거두어 가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전능자앞에서 "전세금을 올려드릴테니 더 살게 해주세요"라든가, "내 집이니 상관 마시오"라고 말 할 수는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문득 나의 육체를 돌아보니 이젠 어지간히 살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오늘까지 탈 없이 걸어온 길을 회상하면서 감사를 드렸습니다. 성경 고린도후서 5장1절 이하에 보면 인간의 육체를 "땅에 있는 장막집"으로 표현했습니다. 여기서 장막이란? 텐트(tent)를 말하며, 따라서 나그네 인생길에 있어 육체의 임시성과 나약성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언젠가는 반드시 이사를 가야만 하는 운명인 것입니다.

아파트가 사람이 살기 위해 지어진 것처럼, 육체는 영혼이 살기 위해 지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죄의 삯으로 육체는 70-80년이 지나면 무너지며, 영혼은 이사를 가게 되어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안다"했습니다. '영원한 집'은 영혼이 하늘에서 입고 살게될 영광스러운 '신령한 몸'을 의미합니다(고전15:44).

그러므로 이 썩을 것이 썩지 않을 것으로 입겠고 육체는 희망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령한 몸은 신령한 세계인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됩니다. 이것이 믿는 자를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인 것입니다. 따라서 한시적인 육체의 장막집에 살면서 더 이상 탄식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내셨던 김활란박사님은 그의 육체가 무너지는 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딸들아! 내가 천국에 입성하니 힘찬 박수를 쳐다오" 얼마나 희망찬 고백입니까? 어느 날 갑자기 육신의 집을 비워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에 소망 중에 돌아갈 영원한 집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편지에 뵈옵기를 원하며 가정에 건강과 평안이 있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정정관목사 드림.